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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과 개성공단의 공통점은 무엇인가=개성공단사업지원단 개발기획팀 이종현 사무관

악성(樂聖) 베토벤. 악성 종양이나 악성 빈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음악의 대가 베토벤과 개성공단. 도대체 이 둘이 무슨 관계가 있냐고? 아무리 생각해도 전혀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자 이제부터 필자의 궤변을 들어보시라.

 

6세기경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그레고리안 성가’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 서양음악은 중세 음악, 르네상스 음악, 바로크, 로코코 시대를 거쳐 고전주의, 낭만주의 등으로 발전했으며 19세기 이후부터는 음열주의 등을 위시한 현대음악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서양음악사의 흐름 속에서 베토벤이 ‘매우 유명하며 중요한 업적을 가지고 있다’는 정도는 굳이 필자의 글을 빌리지 않아도 독자들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최소한 베토벤이 누구인지 ‘네이버’에 물어보는 독자들은 없을 테니까.

 

베토벤의 서양음악사에의 공헌은, 비록 음악학자 또는 음악가에 따라 여러 가지를 이견들이 있지만, 필자는 단 두 가지만을 이곳에서 언급하고자 한다. 즉 그의 ‘32개의 피아노 소나타’와 ‘9개의 교향곡’이 바로 그것이다.

 

그레고리안 성가 이래로 베토벤 이전 시대까지의 음악의 주류는 단연 성악이었다. 다른 장르라 하여도 오페라 등 거의 대부분 성악과 직간접 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곡은 독주악기 만으로도 충분히 완벽한 음악을 만들 수 있음을 입증하였다.

 

또한 9개의 교향곡이 서양음악사에서 가지는 위치는 32개의 소나타보다 훨씬 높은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그의 협주곡에 대해 바그너는 ‘베토벤의 9개의 교향곡으로 인해 관현악의 발전은 완전히 끝나버렸고 앞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부분은 교향악과 성악의 조화밖에 남지 않았다’고 평가한데서도 알 수 있듯이 교향악사에도 최고의 기념비적 작품들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즉 베토벤이 서양음악사에서 아주 큰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그의 작품들의 위대함이 그 기반이었던 것이다.


악성 베토벤도 당대에는 혹평을 받았다

필자가 이 글을 쓴 목적은 독자들에게 베토벤의 서양음악사적 위대함을 알리고자 함이 아니다. 오히려 필자가 이곳에서 하고 싶은 말은, “그렇다면 베토벤이 살아가던 당시의 사람들은 베토벤을 어떻게 평가하였을까?” 에 관한 부분이다.

 

18세기 후반 독일 중서부의 도시 본(Bonn)에서 태어난 베토벤은, 이름 루드비히 반 베토벤의 가운데 있는 ‘반(van)’ 이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네덜란드계 독일인이었다. 당시 음악의 신동이라 칭송받았던 모차르트의 대 성공을 지켜본 베토벤의 아버지는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돈벌이로 활용하는 탁월한 ‘재테크’ 방식을 고안하였으며, 이를 위해 베토벤을 어린시절부터 매우 혹독하게 음악적으로 훈련 시켰다.

 

하지만 그의 어린시절에 대한 당대인들의 평가는? ‘모차르트보다 훨씬 못하다’ 또는 ‘모차르트에 비해 천재성이 떨어진다’ 등 아버지의 탁월한 재테크 기획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깡통계좌’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필자가 이미 설명한 베토벤의 2가지의 업적에 대해서도 당대에는 논란과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특히 피아노 소나타 29번 ‘함머클라비어’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길고 지루하며 피아노라는 악기의 특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피아노를 때려 부수는 것이 그 목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었다.

게다가 그의 9개의 협주곡에 대해서도 “그의 악보에 따라 연주를 하게 된다면 모든 악기들은 마치 전쟁을 하듯 난장판이 될 것이며 모든 곡들은 지루할 정도로 길기만 하다”는 음악가들의 평가를 받았다.

 

지금 필자에게 성격 급한 독자들로부터 “도대체 베토벤 얘기만 잔뜩 하고 이것이 개성공단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항의전화가 쏟아지고 있다. 여러 독자님들의 항의에 못 이겨서 이제부터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개성공단 사업은 남북 간 안보 및 경제 협력에 있어 이제까지와는 다른 큰 획을 긋는 사업이다. 마치 베토벤이 서양음악사에 큰 업적을 남겼듯이, 개성공단 사업 또한 틀림없이 남북 공동의 경제적 이익창출, 남북의 화해협력, 나아가 통일 한국 건설을 위해 베토벤에 버금가는 업적을 만들어 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 사업은 국내외적으로 이러저러한 비판들을 받아오고 있다. 마치 베토벤이 당대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았던 것처럼….

개성지역은 광복이후 남측의 영토였으나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북측 관할 지역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개성공단 사업을 통하여 이 지역은 평화의 진원지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상상해보라. 한국전쟁 이후로 분단된 한반도에서 남측의 자본이 북측에 투자되어 1만명이 훨씬 넘는 북한 사람을 고용한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이었나? 아마도 이데올로기에 의해, 전쟁에 의해 죽어간 영혼들이 다시 한번 깨어나 현재의 개성공단의 현황을 볼 수 있다면, 그 변화에 놀라서 다시 한번 까무러칠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전 당시 남침로였던 지역을 개성공단으로 개발함으로써, 주둔중인 북측 군부대를 10km이상 후퇴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또한 개성공단을 방문한 남측 인원은 작년 한해 동안만 5만명을 넘어섰으며 이를 위해 하루 21번씩 남과 북 사이의 통행길이 열리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 일이던가? 이러한 성과를 통해 최소한 개성공단이 한반도 평화정착 및 군사적 긴장 완화에 기여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는 듯 하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개성공단 사업에 대한 오해와 진실

 

그러나 개성공단 사업을 통해 북측에 ‘퍼주기’를 했다는 비판이 있다.

개성공단 개발을 통해 북측에 발생한 편익은 작년 말까지 누적액으로 약 3000만달러에 이르고 있다. 현재 실업상태에 놓여있던 개성인근 지역 노동자 1만1000여명이 개성공단에서 근무를 하며 월급을 받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성공단 사업을 통해 북측에 ‘퍼주기’를 했다고? 한번 그 실상을 파헤쳐 볼까?

 

이미 작년 초에 개성공단 조성을 위한 경제적 비용과 편익량이 같아졌으며(즉 손익분기점에 도달 했으며) 작년 말 기준으로 남측이 경제적으로 얻은 편익은 무려 8000만달러에 이른다. 월 70만 달러의 임금을 북측에 제공하면서 800만 달러 분량을 생산하고 있는 것이 개성공단의 현실이다.

 

퍼준 것이 있다면, 개성공단에 입주한 남측기업에 엄청난 경제적 편익을 퍼주었다고는 말할 수 있다. 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만을 제공하였고, ‘시장’이 입주기업에 엄청난 돈을 퍼주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북(한 개성공단 입주기업)측에 퍼주기’라고 불러주면 어떨까?

 

다음으로 개성공단 사업을 통해 유입된 현금, 즉 북측근로자 임금이 ‘군사비로 전용’된다는 비판을 받아오고 있다. 아마도 임금직불이 실현되지 않음으로 인해 이러한 비판이 나오고 있으리라. 물론 군사비로 전용되고 있다는 증거는 아직까지 하나도 밝혀진바 없으며, 오히려 이렇게 유입된 대부분의 현금으로 개성시에서 필요로 하는 생필품을 수입하고 있다는 증거는 발견된 바 있다. 그러나 만에 하나 단 1%만이라도 군사비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닌가.

 

필자도 이런 가정은 정말 하고 싶지 않지만, 매월 1%인 7000달러가 군사비로 전용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1년이면 무려 8만4000달러에 달한다. 박봉을 받고 사는 필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보기에게도 엄청난 액수이다.

 

그러나 한 가지 사례만을 비교해보자. 남측의 수많은 군장비 현대화 작업 중 2008년까지 40대를 도입할 예정인 차세대 전투기 F-15K의 대당 가격이 1억달러에 달하며 총 사업비가 40억 달러라고 한다. 물론 남측이 더 많은 국방비를 들이기에, 작은 돈이라도 군사비로 전용되는 것을 눈감아주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군사비 전용 문제야 말로 우리가 정말 걱정하는 부분이며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이 발생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음으로 ‘월 2달러 노예노동’ 부분이다. 실제로 개성공단에서 근무하는 북측근로자 1인에게 지급되는 액수는 월 평균 70달러이다. 그러나 노예노동을 주장하는 근거는 ‘근로자들에게 급여를 현금으로 주지 않으며, 주더라도 공식환율에 근거한 북한돈으로 주기 때문에, 이는 북한 암달러 시세상 2달러 밖에 되지 않고, 그러기에 노예노동을 한다.’는 것이다.

 

최소한 북측의 연간 GDP가 250달러임을 볼 때, 월 2달러에 연간 수입 24달러라면 과연 생활이 가능할까? 개성시내에서 사람의 얼굴빛만 보아도 개성공단 근무자들은 단번에 표시가 난다고 한다. 개성공단 근로자들은 다른 북한 주민들에 비해 얼굴에 화색이 돌고 살도 통통하게 올랐음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한다.

만약 평균 GDP에도 못미치는 월 2달러 임금을 받고 생활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개성공단 근로자들은 그 반대로 더욱 핼쑥하며 몰골의 남루함을 통해서 일반 시민들과 구분될 것이다. 노예노동과 이 둘 중에 하나는 틀림없이 거짓이리라.

 

또 하나 지구상의 어떤 정부가 자국민 급여를 ‘암시장 시세’에 맞추어서 주는가? 만약 암시장 시세에 맞춰서 준다면 그게 암시장인가 아니면 공인된 시장인가? 필자의 궤변이 맞는지 틀린지는 독자들께서 직접 판단하시리라 믿는다.

 

또 다른 비판은 개성공단을 통한 ‘첨단기술 유출’ 부분이다. 참으로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작년에 세계최초로 이동 인터넷 서비스인 와이브로를 개발하였고, 올해 안에 한국인 최초 우주인 선발이 있을 것이며, 나노 기술을 이용한 반도체 기술을 실용화하고 있다.

 

그러나 개성공단에는 이미 우리나라 1970년대의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주무기 ‘미싱’이 그 주축을 이루고 있을 뿐이다. 미싱이 수백대 씩이나 설치되었다 한들 어떻게 첨단기술이 유출되겠는가? 그 뿐만 아니다. 세계는 싱글윈도우 시스템을 이용한 최첨단 행정서비스 제공을 위한 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각종 인허가 발급 등 단순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인 ‘종합지원센터’ 건립으로 첨단 기술 유출우려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 독자들의 몇 명이나 공감을 할까?

 

필자의 두서없는 글을 읽고도 개성공단을 비판하고 싶다면 그것을 막지는 않겠다. 하지만 진실을 왜곡한 비판은 하지는 말아 주길 바란다. 그래도 못 믿겠다면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해보라.

 

정치적·전략적 복잡성으로 인해 개성공단 사업의 순수성에 대해 가장 많은 의구심을 품었던 어떤 인사는 작년 말 “개성공단사업은 북한의 개혁 측면에서 이해된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국제정세의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긍정적인 발언이 나오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제대로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은가?

이야기를 돌려서 다시 한번 베토벤을 생각해 보자. 만약 베토벤이 사람들의 비판이 두려워 자신의 창작 활동을 포기했다면, 지금 우리가 듣는 아름다운 음악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그 아름다움에 있어서 지금보다 덜 풍요로웠을 것이다.


개성공단 사업은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

 

그렇다면 개성공단 사업을 추진하고자 하는 우리 자신에게 스스로 묻는다. 개성공단에 대한 현재의 비판이 두려워 우리가 이 사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다면 장차 우리의 후손들은 역사에서 우리들을 어떻게 평가할까?

 

현실의 비판을 면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역사의 평가를 더욱 두려워하며 현재의 비판을 감수해야 할 것인가?

 

필자는 이 두가지중 한 가지를 선택하도록 강요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이것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우리의 후손들이 태어난 후에 우리를 이렇게 평가할 것이라는 것을….

 

‘그대들이 개성공단 사업을 시작하였기에, 통일한국의 작은 씨앗이 뿌려졌습니다.’

‘그대들이 개성공단을 사랑하였기에, 한민족은 진정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대들이 개성공단 사업을 성공하였기에, 통일한국은 이처럼 든든한 기반위에 올라섰습니다. 마치 베토벤이 온갖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작품을 통하여 음악을 한 단계 높은 반석위에 올려놓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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