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3년전 10월초의 어느 일요일에 엄청난 여객선 침몰사고가 있었다.
▲ 국립해양조사원장 정유섭 |
대단한 풍랑이 있었던 날도 아닌데 위도를 출발해 격포로 향하던 서해페리호가 침몰, 아까운 인명이 292명이나 희생됐다. 그 당시는 비행기가 떨어지고, 기차도 탈선하고, 백화점도 무너지고, 다리마저 끊어지는 등 사고가 이상하리 만치 많았던 시절이지만 여객선 사고는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나는 당시 인천지방해운항만청에서 여객선 안전을 책임지고 있었다. 사고가 발생한 곳은 군산청 관할이기 때문에 내가 조치 할 것은 없었지만 사고원인이 무엇일까 궁금해 신문과 텔레비전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언론은 대부분 과적ㆍ과승에 초점을 두고 사고원인을 설명했다. 이 영향으로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서해페리가 정원을 초과해 운항했기 때문에 사고가 난 것으로 알고 있다.
정원이란 무엇인가. 모든 교통수단은 다 정원이란 게 있고 이는 대체로 사람의 쾌적도를 기준으로 정해진다. 지하철에도 버스에도 정원이 있지만 정원을 초과해서 운항하기 때문에 쾌적하지 않은 것이다. 정원초과라는 이유만으로 배가 침몰한단면 흥남부두 철수나 던커크 철수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정원초과가 있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강조하고 싶은 건 정원초과가 약간의 원인을 제공할 수는 있었겠지만 주요원인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서해페리의 직접적인 침몰원인일까. 배가 침몰하려면 배의 고장이나 항로이탈 또는 조종미숙으로 인한 충돌이나 나쁜 날씨 등 무언가 직접적 원인이 있어야 한다. 서해페리의 경우 파도가 높은 상태에서 출항했지만 그 정도 파도는 얼마든지 돌파할 수 있다. 서해페리 침몰 후 작은 선박들이 아무런 이상없이 구조작업에 참여한 것을 보면 이 논리는 증명 된다.
얼마 뒤 서해페리가 인양됐을 때 스크류에 어망이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나서야 궁금증이 풀렸다.
결국 서해페리는 회항하려고 원을 그리며 항해하던 중 스크류에 어망이 걸려 엔진이 정지된 상태에서 옆구리에 파도를 맞아 전복된 것이다. 선박이든 자동차든 엔진이 살아 있을 때 사나운 파도나 바람을 돌파할 수 있다. 엔진은 기계의 심장이고 심장을 잃은 기계는 고철일 뿐이다. 일엽편주로 떠 있는 배는 거친 파도를 헤쳐 나가지 못하는 것이다. 인천에서도 한 달에 한두번씩 여객선이 어망에 걸려 꼼짝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하니 그 위험성의 강도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고를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다가 아무리 넓다한들 모든 쓰레기를 소화할 수는 없다. 특히 어민들이 버리는 어망이나 어구는 바다 속을 떠다니면서 선박운항에 치명적인 위험요인을 제공하고 있다. 해양조사원이 바다 속을 조사하다 보면 어선들이 자주 다나는 길목마다 어마 어마한 물량의 어구가 해저에 쌓여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런 폐어구들은 선박운항에 지장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어족자원을 고갈시키는 부메랑이 되어 어민들에게 돌아오고 있다.
바다에 폐어구 등의 쓰레기를 버리지 않으면 수산자원 보호나 환경보전의 의미을 넘어 귀중한 인명까지 보호할 수 있다. 한 어민이 버린 어망이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는 사고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함부로 바다에 쓰레기 투기를 하지 못할 것이다. 인천 앞바다 속은 한강에서 떠내려 온 쓰레기 뿐만 아니라 인천시민과 경기도민이 무심코 버린 쓰레기가 엄청나게 쌓여 있다.
지금처럼 해양 환경 보호를 소홀히 한다면 자연은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 보복해 올지 아무도 모른다.